바둑판을 처음 마주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넓은 빈칸에 당황합니다. 19줄씩 총 361개의 교차점이 있지만, 시작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되죠. 처음엔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어디에 둬야 할지 막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바둑을 조금만 배워보면 알게 됩니다. 그 넓은 여백이야말로 전략이 자라고, 흐름이 형성되는 공간이라는 걸요. 오늘은 바둑판 위 여백의 의미를 통해,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만들어야 할 ‘마음의 여백’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1. 꽉 채우지 않아야 보이는 것들
현대 사회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채우라고 요구합니다. 시간표를 꽉 채우고, SNS 피드를 빈틈없이 스크롤하고, 머릿속은 언제나 처리해야 할 정보로 가득하죠. 그런데 바둑은 반대로 말합니다. 좋은 수는 돌이 모자란 자리에서 나오고, 여백이 많은 곳에서 더 큰 집이 생깁니다. 마찬가지로 삶에서도 때로는 ‘비워야’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일정을 다 채우지 않은 하루, 말 대신 침묵이 필요한 대화, 가득 찬 답보다 생각할 여지를 남긴 말 한마디. 여백은 비어 있는 공간이 아니라, 생각이 숨 쉴 수 있는 틈입니다.
2. 바둑의 공간 감각, 관계의 거리감
바둑에서 중요한 감각 중 하나는 ‘간격’입니다. 돌과 돌 사이를 너무 멀리 두면 끊기고, 너무 가까우면 효율이 떨어지죠. 그래서 고수들은 적당한 거리, 연결되면서도 독립적인 공간을 만드는 데 능숙합니다. 이건 인간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누군가와 너무 붙어 있으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단절이 오죠. 바둑은 그 사이, ‘서로를 살게 하는 거리’를 배웁니다. 사람 사이에도 그런 여백이 필요합니다. 대답을 강요하지 않는 기다림, 침묵을 허락하는 이해, 일정한 거리에서 응원하는 마음. 바둑을 두다 보면, 관계도 그렇게 두고 싶어집니다.
3. 생각의 속도를 늦추는 연습
바둑은 빠르게 두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이 아닙니다. 오히려 침착하게 전체 흐름을 보고, 다음 수를 깊이 있게 읽는 사람이 강하죠. 그래서 바둑은 자연스럽게 ‘생각을 천천히 하는 훈련’이 됩니다. 우리는 보통 실수하지 않기 위해 서둘러 결정하지만, 바둑은 말합니다. “조금 더 기다려도 돼. 아직 좋은 수는 남아 있어.” 이 메시지는 일상에서도 유효합니다. 당장 답을 내지 않아도 되는 문제, 감정이 가라앉을 시간을 주는 대화, 결정에 망설임이 필요한 순간들. 삶에서 여백이란, 생각이 가라앉을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 여백이 있을 때 비로소 좋은 수를 찾을 수 있게 되죠.
4. 여백이 주는 평온함과 균형
바둑판은 항상 정적인 모습을 유지합니다. 수가 진행되어도 판은 조용하고, 서로 부딪혀도 돌은 말이 없죠. 그 고요함 속에서 진행되는 치열한 전략이야말로 바둑의 본질입니다. 우리는 종종 감정에 휘둘리거나, 속도가 빨라져서 중심을 잃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자극이 아니라 정적입니다. 여백은 균형을 회복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방 한쪽을 비워두는 것만으로 공간이 편안해지고, 마음속 일정에 틈을 주는 것만으로 하루가 여유로워집니다. 바둑판의 여백처럼, 삶에도 그런 평온한 틈이 꼭 필요합니다.
마무리하며
바둑을 오래 두다 보면, 돌보다 여백을 먼저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여백 위에 어떤 그림을 그릴지를 고민하게 됩니다.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너무 많은 걸 채우려 하기보다, 비워두는 공간에서 더 깊은 관계와 더 좋은 판단, 더 건강한 흐름이 자라납니다. 여백은 결핍이 아니라 가능성입니다. 바둑판처럼, 우리 마음에도 숨 쉴 수 있는 공간 하나쯤은 남겨두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