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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과 이창호: 스승과 제자의 전설적인 라이벌 스토리

by FlipBee 2025. 6. 12.

한국 바둑 역사에서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 중 하나는 조훈현과 이창호, 두 기사의 관계입니다.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국내외 대회에서 수차례 맞붙는 경쟁 관계로 발전했습니다. 조훈현은 한국 바둑의 국제화를 이끈 1세대 기사이며, 이창호는 그 계보를 이어받아 세계 무대를 지배한 인물입니다. 이 글에서는 두 기사의 주요 경력과 맞대결, 바둑계에 남긴 영향을 정리하였습니다.

 

조훈현 9단: 한국 바둑의 개척자

조훈현 9단은 1953년생으로, 1962년 일본기원에서 프로로 입단하였습니다. 일본에서 활동한 후 1972년 귀국하여 한국기원에서 활약하기 시작했고, 이후 국내 바둑계를 이끌며 수많은 기록을 세웠습니다. 국내 타이틀 160회 이상, 세계 대회 초대 우승자 등 수치상으로도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습니다.

조훈현은 1984년, 만 9세의 이창호를 제자로 받아들였습니다. 이창호는 조용하고 과묵한 성격이었으나, 집중력과 수읽기에서 비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조훈현은 이창호가 언젠가 자신을 넘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고, 이 예측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창호 9단의 성장과 첫 승부

이창호는 1986년 최연소 입단에 성공한 후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1992년, 제1회 삼성화재배 결승에서 조훈현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세대 교체를 알리는 중요한 장면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창호는 정확한 수읽기와 실리 바둑을 중심으로 한 전략으로 기존 기풍과 차별화를 이루었습니다.

1996년 LG배 결승에서는 다시 한 번 조훈현과 이창호가 맞붙었습니다. 이번 대국에서도 이창호가 승리를 거두며 사실상 국내 바둑의 주도권이 세대 교체된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조훈현은 대국 이후 인터뷰에서 “이제는 이창호가 더 강하다”고 인정하였으며, 바둑계는 이창호 시대의 개막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사제 관계와 인간적인 거리

이창호는 프로 입단 이후 현재까지 조훈현을 ‘선생님’이라 부르며 존경의 태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공식 인터뷰에서도 이를 일관되게 지켜왔습니다. 반대로 조훈현 역시 이창호의 성장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도 경쟁자로서의 긴장감을 잃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사적인 자리에서도 바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으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이후 조훈현은 정치권에 입문하였고, 이창호는 은퇴 후 바둑 보급 활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지만, 바둑계에 남긴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결론: 한 시대의 교차점을 보여준 사례

조훈현과 이창호의 이야기는 단순한 승부가 아닌, 세대 전환과 계승, 경쟁과 존중이 함께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에서 출발해, 공식 대국에서 수차례 맞붙으며 경쟁했던 과정은 바둑계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유사한 의미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두 기사가 남긴 수많은 명국은 오늘날에도 학습과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이들의 사례는 바둑을 배우는 이들에게 실전뿐 아니라 자세와 태도의 모범이 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조훈현과 이창호는 바둑 그 자체를 넘어, 한 세대와 다음 세대를 연결하는 인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