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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제 vs 알파고: AI 앞에서 무너진 세계 1위의 자존심

by FlipBee 2025. 6. 14.

2017년 5월, 중국 저장성 우전에서 열린 '바둑 미래 서밋(Future of Go Summit)'에서 커제 9단과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가 맞붙었습니다. 이세돌과의 5번기 대결 이후 1년 만에 다시 열린 인간과 AI의 공식 대국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당시 세계 바둑 랭킹 1위로 평가받던 커제가 인간 대표로 나섰고, 알파고 역시 한층 업그레이드된 버전으로 등장하였습니다. 많은 바둑 팬들과 AI 연구자들의 관심 속에 진행된 이 대결은 결과뿐 아니라 경기 후 커제가 보인 반응과 바둑계의 변화까지 다양한 논의를 불러왔습니다.

 

커제 9단: 알파고를 이기겠다고 선언한 세계 1위

커제는 당시 20대 초반의 젊은 기사로, 빠른 승부 감각과 전투 중심의 전법으로 유명했습니다. 중국 바둑계를 대표하는 선수로 다수의 세계 대회를 우승하며 명실상부한 세계 1위 자리에 올라 있었으며, 이전부터 알파고와의 대결을 공개적으로 요청해 온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AI에게 인간이 패배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발언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알파고와의 대국은 단순한 승부를 넘어, 인간 대표로서의 자존심이 걸린 경기였습니다.

당시 많은 이들은 이세돌의 패배 이후 커제가 인간 측의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경기 전 인터뷰에서 커제는 자신감을 드러내면서도, 알파고의 분석력에 대한 경계심도 함께 나타냈습니다. 그는 “나는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싸울 것”이라며 기존의 인간 중심 사고가 아닌 새로운 전법으로 대국에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알파고와의 3번기: 완패로 끝난 인간의 도전

대국은 3번기로 구성되었으며, 커제는 3국 모두 알파고에게 패했습니다. 1국에서는 초반 팽팽한 흐름을 보였으나 중반 이후 알파고의 정확한 집 계산과 안정적인 운영에 밀렸습니다. 커제는 종반까지 집중력을 유지했지만 반전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패배하였습니다. 2국과 3국에서도 커제는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알파고는 흔들림 없는 운영으로 대응하였고, 결국 커제는 단 한 판도 승리하지 못한 채 대국을 마무리했습니다.

경기 중 알파고는 인간 기사들에게는 보기 힘든 유연한 수를 자주 보여주었습니다. 기존 정석을 과감히 벗어나는 수, 상대방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수법, 그리고 계산을 기반으로 한 안정적인 마무리 능력 등은 커제에게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특히 알파고의 집 계산 정확도는 거의 실수 없는 수준이었고, 수읽기 범위에서도 인간의 한계를 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경기 후 커제의 반응과 바둑계의 변화

3국이 끝난 직후 커제는 눈물을 보였습니다.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스스로도 해법을 찾지 못한 무력감이 원인이었습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내가 졌다. 그것도 아주 철저하게 졌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한 수도 이긴 수가 없었다는 것이 가장 괴롭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이는 바둑 역사상 보기 드문 발언으로, 바둑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커제는 이후 AI를 거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AI와 경쟁할 수 없다면, AI에게 배워야 한다”고 말하며 스스로 알파고의 수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대국 이후 중국 바둑계에서는 AI 기반 학습 시스템이 빠르게 도입되었고, 커제 역시 AI를 적극 활용하여 새로운 스타일의 바둑을 구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이며, AI와 인간의 협업 모델을 지지하는 대표적인 기사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알파고의 은퇴와 남긴 의미

이 대국을 마지막으로 알파고는 공식 바둑 활동을 종료하였습니다. 구글 딥마인드는 알파고의 기술을 의료, 과학, 에너지 최적화 등 다른 분야에 응용하는 연구에 집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알파고는 불과 몇 년 사이에 인간 최고 기사들과의 대국을 통해 기술적 완성도를 입증하였고, 바둑이라는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도달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알파고의 은퇴 이후 등장한 다양한 AI 바둑 프로그램들은 현재까지도 기사들의 훈련과 복기에 활용되고 있습니다. 바둑계는 알파고와의 대국을 전환점으로 삼아 기존의 직관 중심 전략에서 데이터 기반 분석과 AI 복기를 병행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인간은 패배했지만, 그 과정에서 새로운 학습과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계기가 마련된 것입니다.

 

결론: 자존심을 넘은 학습의 계기

커제와 알파고의 대국은 결과만 놓고 보면 인간의 완패였습니다. 하지만 경기 이후 커제가 보여준 태도 변화와 학습 의지는 바둑계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는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받아들였고, AI를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는 자세를 통해 다시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이 인간의 저항을 보여주었다면, 커제와 알파고의 대국은 인간의 수용과 적응을 보여준 사례였습니다. 두 대국은 모두 바둑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인공지능과 인간이 대립이 아닌 협업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시사했습니다. 이 대결은 단지 바둑의 승부가 아니라, 시대의 흐름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